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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創世 이제 나의 도약은 없다. 이제는 너의 도약을 밑에서 지켜보며, 동시에 끌어내리며 그것을 바라보는 추악한 제 시선을 정의내리려 노력할 것이다. 당신의 원망은 제가 납득할 수 있을 만한 것이니 그것은 필시 양측 모두에게 슬픈 일이었을 것이다. 당신과 그는 똑같은 곳에서 태어나, 똑같은 곳에서 자라, 똑같이 탈출하여, 똑같은 별명을 들어 똑같이 인간을 사랑했으니. 그럼에도 다른 길을 간 것은 그와 당신이 다른 사람이었기 때문이리라. 그는 태연하게 입을 연다. 차분함과는 거리가 먼 모습, 흔들리는 목소리와는 사뭇 다른 무심한 어조. 넌 귀신이 식사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나? 아니, 분명 없겠지. 있더라도 너는 그곳의 방관자이자 방해자였을 뿐이었겠고. 귀신의 식사 예절은 어쩌면 인간의 그것과도 똑같으며 동시에 달..
生寄死歸 어둠에 창백한 꽃송이마다 깨물어 피터진 입을 맞추어 마지막 한방울 피마저 불어 넣고 해돋는 아침에 죽어가리야 (조지훈/맹세) 글쎄, 그들이 우리의 희극을 이끄는 자라지만, 이야기의 주인공은 끝내 우리가 아닌가? 우리의 유래를 위한 부가 장치가 그들이라고 생각하는 건 어때. 당신의 의견을 무시할 셈은 없었으나 여전히 한없이 무심한 말은 그의 목구멍을 타고 내려와 혀 끝에 맴돕니다. 적어도 자신은 장기말 따위가 아닌, 그들과의 관계 또한 얽힌 하나의 소관일 뿐이라 믿으며. 우리가 잘못한 것이 있다면 인간의 본능대로 살아가고픔을 멀리서 바라보며 조금도 이해하지 못한 채 이기적이라 판단하여 잣대를 들이미는 자들을 진작 무시하지 않은 것만이 잘못일 것입니다. 우리는 잘못한 것이 없으니 우리가 받을 벌은 없다. 글..
敞世 너희의 그 도약이 한낱 제자리 높이뛰기라, 네가 향한 곳이 창세創世는커녕 창세敞世였을 뿐이라면. 그 도약은 의미없지 않은가! 더 로드에서, 수십 명. 다른 농원에서는 수백, 어쩌면 여태껏 수를 알 수 없는 수많은 아이들이 전부 죽었다. 그들 중에는 너보다 전투에 능한 아이도 나보다 영리한 아이도 눈치가 좋은, 발이 빠른, 운이 좋은 ,수많은 아이들이 있었겠지. 그렇지만 그 아이들이 모두 어떻게 되었지? 그들은, 여기까지 도달하지 못했을까? 어찌 너는, 그런 헛된 도전에 너의 목숨과 안위를 어찌 갈아넣을 수 있지? 당신의 말은 옳다. 그리고 그것을 그도 느끼고 있기에, 동시에 그 감정을 가장 싫어하기에, 그는 입을 열어 당신의 말에 반박하기보다는 귀를 막아 제 끊어질 듯 불안한 심정을 잡아내려 한다. 어릴..
眼高手卑 능력은 비난 속에서는 시들고 말지만, 격려 가운데서는 꽃을 피우는 법이다. 능력을 어수룩하게 가지고 있으면 오히려 자기 생애를 괴롭히는 결과가 된다. -장자(莊子) 시끄러워! 닥치란 말이다. 당신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제가 틀렸다고 말하는 것만 같아서, 동시에 당신의 말한 바가 정말로 맞는 것만 같아서. 그렇지만 당신이 맞다는 것을 제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에. 다만 그에게는 반박할 지식도 지혜도 부족한 것 같기에. 아, 이런 그는 또다시 무능을 느낀다. 그것은 그가 가장 혐오하던 그 감정. 어쩌면 그가 이곳으로 도망쳐 왔을지도 모르는 원인 중 하나. 당신의 말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입술을 살그만 깨물던 그의 침착한 표정이 깨진다면. 그의 단단한 신념에 그릇되었다는 잣대를 가져다 댄다면. ..
花間蝶舞 희극은 유예된 비극에 불과하다-피코 아이어 그렇다면 우리의 희극은 비극으로 이어질 것인가, 이름없는 나의 꽃이여. 꽃 사이를 날아 당신에게로 다가가는 것이 그들의 비극, 그리고 우리의 희극. 그렇다면 어찌 말해야 하지? 우리의 희극이 비극이 되어 좋아할 자가 그들 외에 더 있나. 앨리스. 우리의 이름은 과거와도 같으나 과거와는 다르다. 그것은 섣부른 어린 날의 단정 덕에 일어난 일이었으니 여느 여름날의 우리는 녹아 흐물흐물 섞여 형태조차 알아볼 수 없는 납덩이가 되었으리라. 현실적인 것만을 좇는다며 자신을 한정짓던 그도 결국에는 짓이겨져 반절만 남은 다리를 끌어 가장 추악하다 여기던 세계로 발을 들였으니 참으로 애석한 바가 아닌가. 그래도 걱정 말아라. 당신의 나비는 팔이 없어도 날개를 피고 다리가 없어..
하루 평균 두 끼. 되도록 골고루 빠짐없이 든든하게. 수많은 식사를 함께, 그리고 수많은 식사를 홀로. 그래, 그렇다면 이 식사는 언제의 기억일지는 모르겠다. 하루 평균 두 끼. 되도록 골고루 빠짐없이 든든하게. 잘 먹겠습니다 인사 기도를 올리고 예의 바른 포크와 나이프를 들어, 고기를 잘라 입에 넣어보도록 하자. 입안에 퍼지는 그 육즙은 혀를 태우고 그 고기는 목청을 말리지만 꾸역 꾸역 입에 밀어넣어 음미하자. 포크를 내려놓은 옆자리의 접시가 깔끔하게 비워질 때까지. . . . 나의 친애하는 가족, 형제, 친우, 그리고 동료. 모두 즐거운 식사 되시길.
본 글은 희연나리(@Letme__Love)에게 저작권이 있으며 무단전재 및 재배포, 이 문장을 지운채로 게시하는 행위를 금합니다. 검고 푸른, 긴 원통이 두 개 달린 물건이 아이의 손에 놓였다. 용도를 알 수 없는 커다란 펜과도 같은 것을 아이는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마마, 이게 뭐야?” “쌍안경이라고 하는 물건이란다. 이걸로 세상을 좀 더 넓게 바라볼 수 있어. 자, 이쪽을 눈에 대고 반대편을 보렴.” 차갑고 푸른, 동그란 것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은 맨 눈으로 보는 것보다 넓고 섬세한 것이었다. 언제나 올려다보던 하늘, 우리의 집인 하우스, 한 집에서 모든 것을 함께 하는 형제들, 그리고 그 저편에 비쳐 보이는 아이의 꿈. 그것이 렌즈에, 푸른 하늘과 녹음 같은 눈동자에 담겼다. 그 순간 아이의 눈빛..
探花蜂蝶 나비는 꽃을 찾을 수 있다. 그것이 그의 본능일 테니. 그렇다면 꽃은 나비를 찾을까. 어루만지듯 당신 숨결 이마에 다사하면 내 사랑은 아지랑이 춘삼월 아지랑이 장다리 노오란 텃밭에 나비 나비 나비 나비 이영도, '아지랑이' 당신의 길디 긴 침묵 사이로 어쩌면 당신의 생각을 드문드문 읽어냈을지도, 아니면 눈치채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필시 그는 몇 년 간의 시간이 무색하게도 타인에게는 조금의 무심함이 남아 있었으므로. 다만 그가 당신의 생각을 읽는다면 필시 그리 대답하겠지. 약자도 강자도 아닌 위치는 어중간하기에, 아랫사람을 동정하며 윗사람을 동정한다. 약자를 비하하며 강자를 악물고 끝끝내 저가 원하는 위치에 도달해서는 그 권력 속에 즐거움을 뿌리내려 누리겠지. 그것은 어쩌면 자신이 희망하는 것, 우리가 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