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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고 푸른, 긴 원통이 두 개 달린 물건이 아이의 손에 놓였다. 용도를 알 수 없는 커다란 펜과도 같은 것을 아이는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마마, 이게 뭐야?”
“쌍안경이라고 하는 물건이란다. 이걸로 세상을 좀 더 넓게 바라볼 수 있어. 자, 이쪽을 눈에 대고 반대편을 보렴.”
차갑고 푸른, 동그란 것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은 맨 눈으로 보는 것보다 넓고 섬세한 것이었다. 언제나 올려다보던 하늘, 우리의 집인 하우스, 한 집에서 모든 것을 함께 하는 형제들, 그리고 그 저편에 비쳐 보이는 아이의 꿈. 그것이 렌즈에, 푸른 하늘과 녹음 같은 눈동자에 담겼다. 그 순간 아이의 눈빛은 밤하늘의 어느 별보다도 밝게 빛나는 것 같았다. 기쁨과 호기심. 이것으로 또 어떤 걸 볼 수 있을까, 내가 모르는 것은 얼마나 더 있을까, 그렇게 아이는 작은 선물을 안고 작은 세상에 뛰어들었다.
아이들의 싸움이라는 것은 정말 별것도 아닌 것으로 시작되고는 한다. 잠자리 침범, 단순히 놀이에서 진 것에 대한 울분이 자잘한 다툼으로 번지기도 하고, 사소한 질투심이 주먹다짐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로넛의 쌍안경이 망가진 그 날도 그랬다. 짓궂은 장난으로 시작된 대화가 말싸움으로 커져버렸고, 로넛은 제 분을 이기지 못해 아이를 밀쳤다. 때문에 목에 걸려있던 쌍안경이 바닥으로 떨어졌고, 아이가 그 위로 넘어지며 한쪽 렌즈가 부서져 버렸다. 마마의 개입으로 싸움은 정리되었고, 둘은 화해하게 되었지만 깨져버린 렌즈를 고칠 수 있는 방법은 하우스에서 없었기에, 그날 후로 아이의 눈에 반사되는 것은 하나의 렌즈로 들어오는 것들뿐이었다. 애석하게도 그날의 밤하늘은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한쪽만으로도 별이 가득한 어둠의 한가운데에 서있는 기분이 들었다. 이제 푸른 눈에 담기는 것은 하우스와, 그 뒤를 가득 채운 세상의 모습이었다.
하우스와 주변의 숲을 노닐던 발이 바깥세상을 향한 것이 되었을 때, 보호라고는 할 수 없는 벽에 가려져 있던 위험을 헤치고 나아간 첫 번째 성취를 두 손에 거머쥐었을 때. 평온했던 하우스의 일상은 무너졌지만 그들만의 새로운 생활에 정착하게 되었을 때. 테스트라던가, 출하라던가 하는 것보다 서로가 함께 함에 기뻐할 수 있는 시기. 아이들은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눈앞의 위험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판단력이 빠른 아이는 상황에 맞는 지시를 내리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기억력이 좋은 이는 주변의 지형을 파악하여 정보를 전달하기도 하며, 발이 빠르고 체력이 좋은 아이들은 위험을 피해 아이들을 위한 것을 구해올 수 있었다. 그중 로넛은 길잡이. 자신이 발자국을 남겼던 길은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으며 오래 전부터 두 눈에 담았던 하늘을 통해 길을 찾아나서는 이였다. 세상으로 통하는 한쪽 눈이 망가진 그 날, 남은 하나의 눈에 담겼던 하우스는 붉은 빛과 함께 스러졌고, 아름다운 밤하늘 아래에 남은 것은 손을 잡고 살아남은 형제들이었다. 제각기 하는 일은 달랐지만 단 하나의 목적, 생존을 목표로 둔 형제들이 별을 머금은 어둠 아래에서 반짝거렸다.
혼란스러운 그 상황에서 아이가 느낀 것은 무엇이었을까. 힘으로, 또는 실력으로 귀신들을 쫓아낼 수 없다는 절망감? 적어도 형제들과 함께 라는 안도감? 혹은 싸울 수 있는 아이들을 향한 질투심? 어느 것이었던, 다 함께 그곳을 빠져나가야 한다는 사실 자체에는 변함이 없었다. 주먹을 쥐고, 한발 앞으로 내딛어 지금껏 피하려고 노력했던 문제에 직면해야 했다. 식용아들을 잡아먹기 위해 달려드는 식인귀들. 누구 하나 전투에서 제외될 수 없었다. 로넛이 싸움에 합류한 것은 자의였을까, 혹은 상황이 만들어낸 타의였을까. 그가 그 싸움에서 내놓은 것은 하나밖에 남지 않은 그의 시선이었다. 복부에 꽂혀 들어온 공격이 쌍안경에 맞아, 그나마 들여다볼 수 있었던 렌즈마저 망가트려 버렸다. 상황이 정리된 후에 산산이 부서진 렌즈에 맺히는 것은 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아이의 눈을 가리는 유리 조각들 뿐이었다.
사랑스럽던 별이 가득한 밤하늘도, 함께 웃으며 지내던 형제들도, 식인귀들을 향한 적의와 그들을 겨누던 날카로운 검과 같던 꿈도, 불타올라 사라진 하우스도. 망가진 시선은 아무것도 담을 수 없었다. 두 눈은 멀쩡했으니 길을 찾아 나가는 것에는 문제가 없었다. 허나 세상으로 통하는 창이 사라진 사람에게 바른길이라는 것이 존재했을까? 혹은, 애초에 바른길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고 바라진 렌즈를 통해 의미 없는 것을 보았던 걸까?
눈이 보이지 않는 길잡이는 이제, 자신이 가야 할 길조차 모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