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나의 도약은 없다.
이제는 너의 도약을 밑에서 지켜보며, 동시에 끌어내리며
그것을 바라보는 추악한 제 시선을 정의내리려 노력할 것이다.
당신의 원망은 제가 납득할 수 있을 만한 것이니 그것은 필시 양측 모두에게 슬픈 일이었을 것이다.
당신과 그는 똑같은 곳에서 태어나, 똑같은 곳에서 자라, 똑같이 탈출하여, 똑같은 별명을 들어 똑같이 인간을 사랑했으니. 그럼에도 다른 길을 간 것은 그와 당신이 다른 사람이었기 때문이리라. 그는 태연하게 입을 연다. 차분함과는 거리가 먼 모습, 흔들리는 목소리와는 사뭇 다른 무심한 어조.
넌 귀신이 식사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나? 아니, 분명 없겠지. 있더라도 너는 그곳의 방관자이자 방해자였을 뿐이었겠고. 귀신의 식사 예절은 어쩌면 인간의 그것과도 똑같으며 동시에 달라서, 게걸스러우면서 우아해서. 공포감을 자아내지. 하루 평균 두 끼. 되도록 골고루 빠짐없이 든든하게. 그들 또한, 잘 먹겠습니다 인사 기도를 올리고 예의 바른 포크와 나이프를 들어, 고기를 잘라 입에 넣는다. 입안에 퍼지는 그 육즙은 혀를 태우고 그 고기는 목청을 말리지만 꾸역 꾸역 입에 밀어넣어 음미하는 거다. 포크를 내려놓은 옆자리의 접시가 깔끔하게 비워질 때까지. 그것은 필시 네가 말했던 그 역겨운 인육 덩어리를 씹는 기분과 다르지 않았다.
그렇기에 꼭 인간이 금수와도 같은 존재라 여겨지는 그 느낌을, 너는 아나? 나는 그렇게 인간을 먹지 않고도 식인을 배웠다. 너처럼 나 또한 나의 밤에 내가 탐하지 않던 인육들을 내 목구멍에서 쏟아 내었고, 낮에는 그 공포의 밤이라도 그리워하며 휴식하기를 바랐다. 그들은 나의 친애하는 가족이며, 형제고, 친우였으니. 그리고 동료였으니. 그렇게 인정하지 않는다면 나는 견딜 수 없었다. 그리 나는 일 년을 살았고, 일 년 동안 미쳤으며 나머지 일 년 동안 비로소 웃었다.
히죽 웃는 그의 미소에는, 여러가지가 담겼다. 그럼에도 내가 그곳에 남아 있었던 건, 귀신이 제 이름을 소개하고, 그가 귀신에게 목숨을 구걸한 순간부터 맹세한 거짓된 말을 하지 않겠다는 그 말 덕분에. 홧김에 내뱉은 쉘터로 가는 길은 모른다 한 변명 덕에.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지만,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말할 수 없는 그 공포를 자초한 것은 자신이기에 이를 필시 세뇌라고 부를 수 없었지만 그를 이곳에 붙잡아 두었고 거짓된 행복에 웃음 짓게 한다.
어리석은 짓을 했군. 화마로 기억을 지우는 것은 불가능할 테지. 누군들 안 해본 줄 아나? 나에게 남겨진 식용아라는 증거를 지우고자 애를 써 제 얼굴마저 태워도 지워지지 않는 것이 나의 출생이었다. 덕분에 나는 내가 그들에게 식용아와 다르다는 사실을 증명해야만 했다. 그래, 너와 나는 크게 다르지 않은 인간이었다. 나 또한 화가 나지 않았을 거라 생각하나, 내가 왜 이리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즐거웠겠구나. 그 부당함을 마음껏 펼칠 기회가 너에게 있었어서! 그것이 너의 행복이자, 네 목표가 될 수 있어서! 그 잘난 창공의 길잡이를 찾아 떠날 자유가 네게 있었어서. 그것을 잊지 않으려 노력할 수 있을 여유가 존재해서! 참으로 부럽구나!
모두가 지지부진해져 있을 때, 나아가지 못하고 무력감에 빠져 있을 때. 그때 길잡이는 앞서 나가 그들을 원 자리로 이끌어야 했다. 그것이 그가 정의한 자신의 유능有能. 그렇기에 그것을 행하려 하였다 모든것이 좌절되었으니 그는 필시 무능無能하구나. 이미 그의 심장은 부서졌고 그것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해 조각을 삼켜 토해 목구멍 안에 박았으니 제 입에서 나오는 것은 독설뿐이랴, 제가 먹을 수 있는 것은 쉽고 달콤한 헛빠진 설탕물 뿐이었기에.
인간은 결국 누구나 본질대로 사는 게 아니겠나?
나의 본질적인 한계는 이곳이었으니, 이제는 너의 한계를 맞을 시간이다. 친애하는 나의 포식자, 동경했던 나의 악식가, 오만했던 나의 뱀, 그리고 정말로 부러운 나의 별. 내가 바라본 뱀 자리는 아스클로피우스가 아닌 자의 뱀이었으니 당신이 논하는 인류애에 어찌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미지를 쫒던 내 손발은 귀신의 손톱에 잘려나갔으니 이제 스러진 그를 밟고 당신이 함께 굴러 떨어져 주었으면. 그것이 그의 모순된 바람이다.
아, 삼 년 간의 후회는 막이 터진다. 이제는 서로 돌이킬 수 없으니 자, 눈물을 흘릴 시간이다. 길을 잘못 들어 낭떠러지에 떨어진 자의 손을 잡을 순 있어도 이미 떨어진 자를 위해 또 떨어질 사람은 없으니. 추락하며 보이는 하늘은 참으로 헛구역질 나오게 역겹다. 그는 눈을 뜬다. 당신의 새카만 눈동자를 바라본다. 그의 동경은 이제 시기가 되었으며 그의 사랑은 이제 당신에게 닿을 수 없으니 당신 또한 이곳으로 끌어내릴 것이다. 당신의 왼손에 기대, 자신의 오른손으로 붙잡던 당신의 손목을 놓는다. 당신의 거칠면서도 부드러운 그 손길을 잠시간 느끼며 그는 그는 결국 또다시 어리석은 선택을 한다. 이것은 당신이 초래한 결과, 동시에 그가 초래한 결과. 그리고 그 누구도 바라지 않았을 결과. 하지만 행하여야만 하던 결과. 미쳐버린 그는 손을 내뻗어, 제 뺨을 감싼 팔을 잡은 반댓 손을 내민다. 그래서 당신의 가슴께에 기대서, 힘을 주고 일어난다. 그래, 이제는 역전된 모양새. 당신을 눌러내리며, 그는 얼굴 바짝 들이댄 채로 당신의 눈가를 쓸어내리며 말한다.
나에게는 없는 그 기회, 이젠 나를 사랑하지조차 않는 네가 만들어주지 않겠나? 네 자비 대신 내가 원하는 것은 네 목이니, 내가 이곳에 온 이유가 그것이며, 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마지막 약속이 내가 사랑하는-사랑했던 이의 목을 그들에게 나 대신 바치는 것이었지.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으며 다음이 없다. 그러니,
부디 나를 위해 죽어 주겠나, 아니. 나를 위해 죽어 주어야겠다. 그렇게 내가,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더라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나만의 창세創世가 되어 주겠나? 우리 둘의 목숨이 끝나고는, 그때는 새로운 세상에서 다시 만나 원없이 사랑하기를 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