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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로그/열무커

別有風景

 집을 박차고 나오니 세상은 생각보다 나를 반기지 않았다.

 

 집안의 지원은 있었으나 홀로 버티고 싶다는 마음에 보내주는 것은 거절하거나 처박아 놓았다. 내 이름으로 된 그린고트 계좌를 새로 개설하고는 어설픈 실력으로 만든 지팡이에 가문의 이름을 대충 박아넣어 값비싸게 팔아넘겨버리며 번 돈을 집어 던져넣었다. 소소하게 가지고 있던 어쩌면 의미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이제는 가치없어진 것들을 죄다 팔아넘겼다. 이전에 쓰던 귀걸이라던가, 그런 것들. 그러자 돈이 꽤 모였다. 나쁘지 않은 N.E.W.T 점수는 정말 신의 한 수였다. 비록 몇 개는 A지만 나머지는 보통 O. 아슬아슬하게 커트라인에 맞춰 마법부에 입사했다.

 

 입사한 곳은 마법사고와 재난부, 취직한 자리는 망각술사. 가장 자신이 있는 마법을 꼽으라면 정신계 마법과 변신술인 내게 이 직업은 정말 잘 맞았다. 특히 누군가의 '기억'을 빼앗는 행위는 내게 희열을 가져왔다. 대상은 머글이겠지만, 뭐 어떤가. 

 

 기억이 없다는 것은 단순한 불편함이 끝이 아니었다. 언제나 한구석이 허전하고 상대는 기억하는 것을 나는 몰랐다. 어쩐지 조각조각 남아있는 기억들은 서로 조금도 맞지 않는 퍼즐 조각이라 아무리 맞추려 들어도 끝부분이 굽어 상할 뿐이었다. 그렇기에 남은 자리에 도화지를 깔고 멋대로 그림을 그리려니 세상은 녹록치 않아서 내게 잉크 한 병 주는 것마저 아까워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그대로 한 병뿐인 잉크에 만족한다. 그리고 다른 이들의 잉크를 빼앗아 엎어버리고, 퍼즐을 뒤집어 빼앗아 저 멀리 던져버린다. 그런 행위에서 희열을 느낀다. 죄책감은 없다. 이것은 내 일이며, 머글에게는 마법을 들켜선 안 된다. 아직까지는. 그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 아니던가.

 


 언젠가 한 번 와장창 일이 벌어졌다. 누군가 꽤 많은 머글 앞에서 마법을 썼다지. 베테랑 몇몇은 투덜거리고 신입들은 사명감에 찬 채 현장으로 나갔다. 웃기게도 익숙한 장소지만 아니었다. 수족관이라, 내가 아는 곳은 아니었다. 아니 정말로 아는 곳이 아닐까? 어쨌든 적어도 내가 좋아했고 학창 시절 들락거렸었던 수족관은 아니었다. 아니, 내가 학창시절 수족관을 들락거렸었던가? 아, 그건 형의 일기였다. 어쨌든 그랬다. 아주 익숙했지만 그뿐이었다. 그곳은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 머글들이 수십 단위로 돌아다니고 있는 곳에서 오러와 범죄자들이 한 차례 충돌한 모양이었다. 곳곳에서 '레파로!' 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얼떨떨하게 서 있거나, 기절해 있거나, 불운하게도 이유도 모를 사고로 사망한다 적힐 사람들 앞에서 지팡이를 휘두르며 그 사람들의 인생 일부를 조각내 제멋대로 물로 씻어내버렸다. 

 

텀벙, 이런, 누군가 멍청하게도 아슬아슬하게 버티던 수족관을 건드린 모양이다. 와장창! 하는 소리가 내 귀를 찌른 순간 무릎 밑이 물에 휩쓸려내려갔다. 그대로 발을 돌렸다. 같이 일하는 동료인 와중에 내가 못 도울 이유는 뭔가. 이미 내 할일은 다 끝났으니 상관없겠지. 그대로 새파란 지팡이를 들고, 레파로 주문을 외우려던 찰나에.

 

커다란 수조는 엉망진창으로 깨진 채로 유릿조각을 휩쓰는 물길과 함께.

그대로 내 살갗을 베고 지나가는 유릿조각이 밟혀 조각조각 깨져서

서투르게 고쳐진 조명과 죽어버린 물고기 시체가 떠다니고

빈 자리에 보이는

텅 빈, 아무것도 없는 그 자리에서 내 눈에 보이던 

別有風景

...

...씨!

블레이크 씨! 뭐 하세요! 아이고 이거 봐라 다리 밑에 다 베였네. 괜찮아요? 

 

누군가의 말이 들리면 상념에서 깬다. 이런, 어느새 텅 빈 수조는 제자리다. 전투 자국을 지우고 붕괴 사고로 위조하고, 머글 신문에는 아마 내일 붕괴 사고로 기사가 나겠지. 마법사 일보에는 오늘이려나. 그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그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 저녁에는 술이나 마시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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