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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로그/봄바다커

自中之亂

아프다, 솔직히 이제는 악기바리로 버틸 고고한 자존심이 아니었다면 그저 징징거리며 도망쳐 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이 의미없는 주먹다짐에 무슨 가치가 있으려나, 하는 생각도 함께. 그런 생각이 뇌에 맴도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 당신의 호선을 그린 입꼬리를 향해 손을 내다뻗을 뿐이었다. 때리는 것도 맞는 것도 요령도 경험도 없는 초짜. 체격 차이도 무시할 수 없는 그야말로 완벽하게 불리한 싸움에서도 고고한 척 웃어대며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모양새를 낼 수 있는 까닭은 그래, 당신의 그 힘빠진 주먹 덕분이었다. 무서워하지 않기는. 그리 중얼거리는 말은 짓씹은 잇몸 사이로 흘러나가 들리지조차 않았겠지. 당신의 두려움은 맞는 것이 아니라 때리는 것이라는 것쯤은 이미 알아채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리 잘난 척 할 수 있는 거겠지.

 

어머나, 무서워라. 입만 살아서는 나불나불거리는 것이 주문은 잘 외울 것 같아서 다행이네. 나 또한 고대하고 있단다. 마법사들의 결투는 너도 잘 알고 있지? 물론 지금 학교에서 하는 건 별로 좋은 방법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너와 나의 사이를 결단짓기엔 충분할 테니까. 2번 타자를 꼭 준비해 두는 게 좋을 거야. 그렇지 않다면 그대로 쓰러진 널 수습해줄 사람은 없을지도 모르니까.

 

그저 제 멱살만 부여잡고 얌전히 맞아주는 모습이 마치 당신이 이 상황을 흘러가게 만들고, 자신은 휩쓸리기만 한다는 것 같다는 생각을 문득 했다. 혼자만의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반사적으로 명치를 맞으니 몸을 움츠리면서도 솔직히 이제는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대책없는 생각으로 팔을 휘두른다. 이제는 그저 눈에 보이는 것을 냅다 집어 당신의 머리 위에 내려쳐버리려는 심산으로 더듬거리던 찰나, 손에 잡힌 건 자신이 짐을 챙길 때 구겨넣었던 스펠로테이프였다. 으으, 잇몸 사이로 새어나오려는 고통의 소리는 잠시 죽여두고 여유로운 마냥 아무 말이든 뇌를 거치지 않고 내뱉기 시작한다. 주의를 돌리곤 이걸로 당신을 동여매버리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물론 당신의 교복은 금세 못 쓰게 되어버리겠지만 제 알 바는 별로 아니었다.

 

말은 잘 해. 말은. 미스터 덱스터... 덱스터라. 네가 어떻게 순혈인지 상상도 안 간단다. 하긴, 나도 내 자리와 위치에 걸맞지 않은 행동을 하고 있는 중이지만. 아버지는 항상 내게 고귀한 피를 강조하셨는데. 우리의 피가 이리 한데 모이며 흰옷을 적시는데도 그저 추잡하기만 하니 웃기지 않니? 푸른 피라지만 웅어리지는 건 붉은색이네. 그렇지 않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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