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임상 실험은 모두 실패로, 전부 중단하였다.
더 이상 생존자가 남아있지 않으므로, 추가로 2차 임상 실험 대상자를 선별하여야 한다.
방금 전 그는 여기에 온 목적을 이뤘다. 컴퓨터 바탕화면에, 수십의 자료 중, 하나를 열자 보인 그 글이 조금은 원망스러웠다. 그 자리에서 당장 주저앉아 울거나 화를 내진 못하였다. 이미 예상하던 일이었다. 부정하고 싶던 사실을 눈앞에 두자 그는 의외로 허탈하고 머리가 깨끗해졌다. 오는 길에 좀비가 목을 물었었나. 제 목을 쓸어내린다. 아쉽게도 이곳을 잘라내버리면 자신은 죽는다. 물론, 그렇지 않아도 마찬가지겠지만. 그가 이리 멀쩡하게 서 버틴 건 그 사실이 너무나도 충격적이라서일지도 몰랐다.
돌아가려는 찰나에 모두가 공포에 떨었다. 밖에는 수십의 좀비가 있다. 의견은 갈렸다. 민주주의적인 방법으로 원하는 바를 투표하였고, 나가기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좀비가 너무나도 많았다. 그는 주머니의 열쇠를 만지작거렸다. 모든 폭동의 원인이자 중심, 제 눈을 빼앗은 사람, 그리고 한때 자신이 가장 친절하게 대해 줬던 수감자의 독방 열쇠. 자신이 마음껏 정해진 규칙 아래 제 마음대로 행동하였을 적의 물건. 왜 가지고 있던 걸까. 없는 자에 대한 미련인가. 이걸 챙길 바에 무기라도 하나 더 챙겼으면 이 꼴은 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입을 열어 감염자의 추방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누구도 제안하지 않았던 것이지만 이곳에 남은 자들이 안전히 살아남기 위해서는 감염자들과 함께여선 안 된다. 계속 주장하지 않았는가? '물린 자는 사람이 아니다. 물론 물린 자리를 절단할 수 없는 사람으로 한정하지만. 그들은 좀비며 그들을 죽인 것은 살인이 아니다. 그들은 인간과 공존해선 안 된다.' 그것은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았던 그의 신념이다. 그를 여태껏 악인살인자으로 만들어주지 않았던 명분이었으며 동시에 제게도 피해갈 수 없는 족쇄가 되어 매달렸다. 그는 이제 마음가는 대로가 아닌, 평생 배운 대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선인이 아니라도 좋다. 당신들이 누구건 간에 살아남았으면 한다. 어차피 살 가치도 의욕도 없는 자의 죽음으로 그는 자신과 함께하던 이들을 살리기로 결정하였다.
사실은 나가고 싶지 않았다. 지금 나가지 않아도 괜찮았다. 저를 묶어두고 훗날 처리를 부탁한다던가. 하는 선택지가 있었다. 이들을 위해 자신이 죽어야 하는 이유를 알지만 모르겠다. 죽음이 두려웠다. 그것은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었다. 그렇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지금 머뭇했다가는 미련이 생길지도 모른다. 다른 이들이 얻을 필요가 없었던 상처를 입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결정으로 하여금 물린 사람은 희생하는 것이 맞다라는 주장의 좋은 선례를 남긴다면야... 남은 이들을 살리고, 만약 살아남는다면, 아니 죽더라도 저들을 하나만이라도 더 죽인다면, 내려가 이곳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면, 그래. 어떻게든 더 오래 살아남는다면, 어떻게든 가치 있게 죽는다면!
생각하기를 그만두었다. 고민할 것도 망설일 것도 얻을 것을 계산하는 것도. 그냥, 달려나갔다. 그래! 내키는 대로. 늘 그렇듯 그의 마음 가는 대로. 정말 좋아하지 않나? 난정헌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었다. 하하! 남길 말도 별로 없었다. 겨우 살아남으라던가, 그딴 말이나 할 뿐이었다. 아이들에게 이것이 큰 기억으로 남지 않기를 바랐다.이것이 만용의 대가다. 사리고 살아라. 그 정도로만 기억하고 있으라지 뭐.
문을 젖히고, 느린 다리를 제멋대로 내려짚고, 달려나간다.
수많은 자들을 내려찼던, 업어주었던, 나아가게 했던, 그들의 걸림돌이 되었던, 죽였던, 죽이고, 죽였던 발이 나아가서
달려나간다. 삐끗한 다리의 통증을 무시하고 길쭉하던 그의 몸이 낮아진다.
수많은 자들을 제압했던, 쓰다듬었던, 안아주었던, 교화했던, 악수했던, 죽였던, 죽이고, 죽였던 손이 나아가서
주먹을 움켜쥔다. 손을 앞으로 뻗는다. 머리카락이 흩날린다.
뒤에선 다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어쩌면 누군가의 말소리가, 울음소리가 들린 것 같기도 하다.
그의 눈 앞에는 계단이 보인다.
그 앞의 좀비들이 도사린다.
그들을 더 불러모을까 봐, 들릴까 봐. 경박한 비명 한 마디도 내뱉지 않으며
수많은 좀비들이 그를 바라본다.
또 그 앞에는 어느 좀비가 자신을 응시한다.
좀비의 그 창백하고 핏기 없는 손에 들린.
그래, 그 앞에 보이는 건, 그를 향하는 총의 총구.
그리고, 들리는 건, 총성.
탕!
첫 총상의 고통은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았다. 제가 총을 맞은 사실은 귓가에 한발 늦게 스치는 총성 때문이었다. 그래도 나아간다. 걸어간다. 달려나간다. 떠오르는 건 없다. 딱히 무언가 바라는 것도 없다. 다만 염치없게 조금만 더 오래 산다는 선택지는 없겠구나! 그것만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그렇지만 멈추지 않는다. 지금 그렇게 하고 싶으니까!
탕!
두 번째 총성을 들을 때쯤 화끈한 감각이 올라올지도 모르겠다. 보통 주마등이란 게 스쳐지나간다면 이럴 때일 텐데. 가소롭게도 가치없고 재미없는 인생은, 과거는 조금도 생각나지 않는다. 가치 있는 죽음이라도 가지겠다는 욕심을 품고 현재를 바라본다.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걸어간다. 달려나간다! 살고자 하는 욕망은 어느새 사라진다. 저 총을 든 놈이라도 죽여버리자. 아니, 총이라도 쓸모 없게. 저놈에게 닿을 수 없다면 총알이라도 제게 더 쓰게 하고 죽고록 하자! 지금 내가 그렇게 하고 싶으니까!
탕!
"젠장!"
세 번째 총성을 들을 때쯤이면 고통이 올라온다. 다만 비명은 목 끝에 걸린다. 겨우 내뱉은 중저음으로 울리는 그 비속어 한 마디만, 오로지 제 귓가에만 맴돌 그 힘없는 말만이 제 입 밖으로 나와 자유를 찾았다. 시야가 뒤집힌다. 걸어갈 수 없다. 뛸 수도 없다. 그저 아득한 정신이 뒤흔들린다. 머리카락이 흩날린다. 뻑뻑한 눈에선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다. 제 본능이 쉴새없이 이것이 위험하다 알리고 있었다. 나아간다. 온몸을 이용해서라도 계단을 향해서인지 좀비를 향해서인지 손을 뻗어본다. 눈앞의 이것들은 점점 수가 늘었다. 총성에 모여들어 제게 우악스러운 그들의 손을, 입을 막무가내로 들이민다. 점점 스러진다. 제 몸이, 제 목숨이. 그것을 알아차렸을 때쯤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새카만 눈으로 보던 세상이 무너진다. 흔들린다. 흐려진다.
마지막 순간에 드디어 주마등이라는 것이 스친다. 재미없는 생이, 지나간다.
그는 좀비 사태가 시작되고, 사실 좀비 구경이란 건 별로 해보지도 못했다. 교도소에 출근한 자들은 이제 퇴근하지 못한다. 모두 그 안에서 굳게 문을 닫으면 좀비고 감염자고 아무도 들어올 수도 나갈 수도 없으니까, 이곳은 최고의 쉘터였다. 무정부 시대 도래 이전까지, 정부에서는 교도소에서 보안을 신경 쓰라 지침을 내렸다. 그리고 모두 월급 하나 못 받는 이 갑갑한 세상에서 숨막히는 업무를 지속했다. 모두가 지쳐가고 예민해졌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자원은 줄었고, 원성은 커졌다. 소식은 빠르고, 반항은 거세졌다. 마침내 무정부 시대의 도래를 올리며 갈등은 최고조가 되었다. 교도관 사이에서도 얼마 지나지 않아 매일같이 싸움이 일어났다. 꼭 며칠 전의 우리들마냥 말이다.
교도소 내 폭동이 일어났다. 지친 교도관 하나가 제대로 문을 닫지 않았나 보다. 몇 명이 탈출해 난동을 부렸다.
분노한 교도관의 험한 제압에 수 명의 죄수가 죽었다. 그들 중에는 그와 친하던 누군가가 있었다. 그는 모범수였다. 나간다면 부모님께 효도하며 죄를 늬우치고 싶다고 입버릇마냥 말하던 이였다. 아마 그가 전날 제게 친절한 얼굴로 그에게 제 몫의 식량을 건네주었더랬지.
마찬가지로 분노한 죄수의 주먹질에 수 명의 교도관이 죽었다. 그들 중에도 그와 친하던 누군가가 있었다. 좀비 사태가 사실은 거짓말일지도 모른다며 제게 낄낄거리던 이였다. 제게 그 엉터리 사투리인지도 모를 것을 가르쳐 준 이이기도 했다.
그 또한 크게 다쳤다. 발목은 그대로 삐끗했으며, 눈은 하나를 잃었다. 불행 중 다행이도 폭동은 무사히 제압되었다. 그것은 이제 남은 거라곤 저들의 위에 있다는 우월감이라던가, 같잖은 교도관으로서의 자존심이라던가, 불타는 정의감이라던가 하는 감정만 스멀스멀 남아 피어오르는 자들의 죽을 힘을 다했던 노력 덕분이었다.
다음 날, 그 나약한 감정과 의무감마저도 휘발된 누군가가 문을 완전히 열어재꼈다. 교도소는 더는 밀폐 구역이 아니게 되었다. 남은 자들은 모두 그 지긋지긋한 곳을 떠나버렸다. 아니,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 게 맞겠다. 그곳에는 난정헌, 그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부모님을 찾아갔다. 넓은 그의 본가와 그 옆의 병원은 어느새 살아남은 자들을 수용해주고 있었다. 그래 봤자 몇 되지 않지만. 그는 그곳에서 지냈다. 부모님과 조카와 함께. 열네댓 살의조카는 매번 시끄럽게 노래를 불러 댔다. 그는 그것 또한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희생하며 헌신하는 시간, 그가 배웠던 대로 살아가는 시간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건 희소식이었다. 백신 개발을 위한 1차 임상실험자를 찾는 그 소식 말이다. 그의 부모님은 기뻐하며 자원하였다. 더 많은 사람을 살리고 오겠다며 그리 떠났다. 그는 자원하지 않았다. 그는 인간을 위해 죽을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후 그들과는 소식이 완전히 끊겼다. 얼마나 지났을까. 백신 개발을 위한 2차 임상실험자를 찾는 소식이 들려온다. 더 이상 그는 이곳에 남을 이유도 딱히 밖에서 부득불 좀비와 진상을 부리는 생존자들과 맞대며 살아야 하는 이유도 찾지 못했다. 이제는 지쳤다. 이리 살다 죽을 바에는 마지막으로 부모님의 생사 정도라도 확인하고 가자. 하는 마음으로 2차 임상실험에 지원했다.
목적은 이루었다. 다행이게도. 그에게 더 삶에서 이룰 것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 무엇을 더 할 수 있지? 살아서 더 무엇을 하고 싶을까? 그의 죽음이 누군가에게 손해를 끼친 것은 아니지 않나? 그러니 편히 눈을 감자. 미련을 버리자. 살고 싶지 않다고 되뇌이어도 마땅한 삶이다. 하하! 다만 작은 소원이 있다면, 염치가 남았다면. 살아남은 사람들아. 부디 선한 이들로 살아가기를 빈다. 그것이 죽은 그에 대한 마지막 도리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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